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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상과 대립보다 끌어 안는 삶을 살라.” 여호수아 91-6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5 그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고 6 그들이 길갈 진영으로 가서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 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 이제 우리와 조약을 맺읍시다 하니 /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지난 6개월 동안 코로나 일구로 두렵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지켜 주시고 이렇게 예배하게 하신 하나님께 우리 모두 감사하는 기도를 함께 하시고 말씀을 들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현장에는 못 오셨지만 라이브톡으로 함께 예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곳 에 임하신 주님이 라이브 톡으로 예배하시는 여러분과도 함께 하십니다. 오늘은 여호수아 9장 전체의 내용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내용이 많지만 기브온 거민과의 조약이 성경 전체에서 무엇을 우리에게 전하려는지에 초점을 두고 함께 말씀을 듣겠습니다. 이해를 위해 앞부분의 내용을 정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들은 요단강을 건너 첫 여리고 성을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두 번째 아이 성 전투에서는 패배했습니다. 원인은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습니다. 그 일로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죄를 지은 자를 찾아 냈 습니다. 그와 가족들을 처벌한 돌무더기라는 표적을 남겼습니다. 그 후에 다시 아이 성과 싸워 이겼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한 주를 살기를 바랍니다.

 

먼저, 기브온 족속과 맺은 평화 조약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두 번의 전쟁 직후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 91-2절에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여리고 성과 아이 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가나안 땅에 살던 일곱 족속이 모두 모여 의논을 합니다. 어떻게 하느냐? 이제 우리들 차례다. 가만히 있다가 당할 수는 없다.“ 일곱 족속이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연합군을 만듭니다. 그들이 힘을 합친 것입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한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신다 해도 일곱 족속이 함께 연합한다면 당할 수 있겠느냐는 논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 기브온족속이 우리는 못하겠다고 하더니 이탈을 합니다. 이 기브온 거민에 대하여 다른 성경에서는 제일 크고, 용감하며 숫자도 많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연합군에서는 주 전력이 빠져 버렸습니다. 축구 대표팀에서 손흥민같은 주전이 빠진 것과 같습니다. 나머지 족속들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기브온 족속이 연합군에서 이탈을 하면서 무슨 일을 꾸몄느냐를 보아야 합니다. 기브온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낼 대표를 뽑았습니다. 그리고 허름한 옷을 입혔습니다. 또한 다 떨어진 망태를 준비하고, 곰팡이가 핀 떡을 담습니다. 신발도 다 떨어진 것을 신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항복을 하게 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싸우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당신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니 받아 주십시오.” 한 마디로 백기를 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가 그들을 보니 근처에 사는 사람들 같은데 멀리서 왔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행색은 정말 멀리서 여행을 온 흔적이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 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곧장 그들과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좋다. 너희들을 우리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주겠다 계약을 하였습니다. 여호수아 927절에 “27 그 날에 여호수아가 그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며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그들은 들어와서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일등 허드렛 일을 하는 종이 됩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두 가지 해석을 합니다. 기브온 족속이 아주 얄밉게 사기를 쳤고, 이 사기에 이스라엘이 놀아난 것이다. 그래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받아 들여 죄를 범하게 되었다는 극단적인 해석입니다. 다른 하나는 조금 진보적으로 무슨 소리냐? 그들이 비록 적이고 방법은 나빴지만 생명을 얻기 위해서 투항을 한 것이 아니냐?”라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들은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레위인을 돕는 봉사하는 자로서 혈통을 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두 가지 해석을 두고 과연 이스라엘이 기브온 백성들과 조약을 맺은 사건이 성경 전체 맥락에서는 무엇을 이야기 할까요? 신명기 71-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신명기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가 아니라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신명기 75절에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일곱 족속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족속들에게 어떻게 할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안에 이미 살고 있는 일곱 족속을 향해 조금도 여지를 주지 말라고 하십니다. 완전히 섬멸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아주 극단적인 표현으로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신명기 74절에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이 부분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일곱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고 뽑아 낼 것을 명령하신 이유입니다. 그렇게 명령하신 것은 그들을 멸절시키는데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뽑아내라고 하신 이유는 더 넓은 관점입니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가나안에 살고 있는 이방 족속의 문화 속에 들어가 그들과 섞여 죄를 짓다가 하나님을 떠날까 봐 하나님이 미리 조치를 하셨던 것입니다. 가나안의 신, 가나안의 문화는 더럽고 추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본성이 그런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 합니다. 그렇지 않는 척하고 있을 뿐입니다. 언제나 죄가 있습니다. 죄에 발동이 걸릴 여지가 생기면 곧바로 움직이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냥 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에 잡초가 무성하게 생깁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겪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못되고 말을 안 듣고 불순종하고 죄를 짓는데 전문인지를 하나님이 잘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당시 가나안의 문화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상을 섬기고, 죄만 짓는 더러 운 문화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체의 여지를 남기지 말고 모두 멸절하라고 명하시고 뽑아내는 일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극단적인 명령을 하셨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또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포괄적으로 읽어야 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은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2010절에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전쟁을 할 때 해야 할 구체적인 사안들입니다. 어떤 성읍으로 나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2011절을 보겠습니다.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화평을 받아들이면 적을 종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하게 노예를 삼으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들일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조건은 그들이 평화를 받아들일 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싸우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명기 2012-15에서 말씀하십니다. “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여러분! 신명기 7장에서는 가나안 일곱 족속에 대해 아주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20장에서는 많이 너그러워졌습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평화를 선언해 봐라. 그래서 평화를 받아 들이면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을 받아 들여라. 그렇지 않으면 같은 방법으로 죽여도 좋다. 그리고 탈취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이니 누리라고 하십니다. 그들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신명기 2015절에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에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 같이 행하려니와.” 가나안 땅의 중심(심장부)이 아닌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지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브온 거민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온 것처럼 형색을 꾸몄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와 계약을 맺고 살아 남게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줍니까? 왜 가나안 한 복판의 일곱 족속에게는 여지를 주지 않고 다 죽이게 하시고,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평화를 선언하여 수용하면 함께 살고, 그렇지 않으면 상종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까?

이것은 바로 비유였습니다. 가나안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성도들의 인격적인 삶을 뜻합니다. 이런 구조로 설명한 내용이 신약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614-16절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믿는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과 상종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지가 없이 끊으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 합니다. 소 두 마리를 한 방향으로 일을 시키기 위해 멍에를 얹습니다. 그러면 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못합니다. 묶여 있어 같은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는 말은 운명을 같이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같은 멍에를 메고 운명을 같이 하는 대표적인 일이 무엇입니까? 결혼입니다. 그리고 동업도 있습니다. 함께 멍에를 멨다 좋지 않게 끝난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여러분 시작할 때는 이 사람은 교회에 나가지 않을 뿐이지, 법이 없어도 살 정도로 착해요.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인생의 목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르고, 철학도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이권이 발생하면 방향성부터 달라지고 같이 갈 수 없게 됩니다. 갈라서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59- 10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사귀지 말라는 말인지, 사귀라는 말인지 헷갈립니다. 10절에 사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니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앞에서 본 고린도후서 614에서는 삶에서 운명을 같이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5장에서는 운명을 같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죄 많은 이 세상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섞여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삽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다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디에 초점이 있을까요? 기브온 족속이 거짓말을 하여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았습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무를 수 있을까요?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데도 고집을 부려 결혼을 했습니다. 서너 달 살아보니까 전에 알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결혼을 무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살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면서 갖게 되는 삶의 무게입니다. 자기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온 족속을 끌어안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신명기 7장 말씀대로 다 죽이라고 하셨다. 멸절하라 하셨다는 말씀만 붙잡고 살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미국이 이라크와 전쟁을 할 때 대통령이 실언 아닌 실언을 했습니다. 그 옆에서 복음주의자들도 이라크를 치는 전쟁을 성전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 전쟁이 성전이라면 미국에 줄서는 나라는 전부 하나님 나라 백성이고, 미국에 줄을 서지 않는 나라는 모두 사탄에 속한 것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향해 이런 대립구도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또 예수의 이름으로 세력을 갖는 일은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힘과 세력을 가지고 무엇을 하라고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 우리가 가로등이 되어 서 있도록 부르셨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길을 비추어 주는 역할을 맡기신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야 가로등끼리 다 모이자라고 합니다. 가로등끼리 모여서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또한 소금은 음식에 골고루 뿌려져야 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소금끼리 뭉치면 이것은 소금 덩어리, 소태가 되어 아무 쓸모가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신 목적은 빛과 소금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힘을 모아 대립하고, 세상 사람들과 싸우라고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세 잡은 어둠의 세력들과는 싸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론은 대립하지 말고 끌어 않고 함께 사는 삶입니다. 기브온 족속과의 화친 문제는 이런 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쪽이 다 나쁜 일을 했고 실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약속을 엎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럴 경우는 안고 가는 것이 그리 스도인의 삶의 무게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안 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가치를 평가 받을 만한 기준은 교회의 좌석이나 성도 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치를 두고 계시는 것은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어떤 십자가의 짐을 지고 삶에서 그것을 녹여 내는가에 있습니다.

성경 인물 중에 두 사람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윗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꿈과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거나 몸부림친 흔적이 없습니다. 형들이 싸움에 다 나갔을 때 막내아들로 어려 부모님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형들에게 음식을 갖다 주고, 안부를 알아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다윗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난리가 벌어져 있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하다가 골리앗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사울을 이어 왕이 됩니다. 그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곧바로 엎으신 것입니다. 인생 밑바닥까지 곤두박질 쳤습니다. 적 앞에서 미친 척하고, 쫓겨 다니고, 아들들에게 배반도 당합니다. 블레셋에 들어가 남의 집의 식객노릇도 합니다. 완전히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처참한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을 보면 많은 내용이 죄를 말합니다. 내 안에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국 다윗을 극적으로 만드신 일도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동시에 다윗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두려운 일이 닥치자 자기 아내를 적에게 팔아 먹습니다. 그렇게 한심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설득하십니다. 끝까지 인도하셔서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스스로 무엇을 내 힘으로 해보겠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많은 경우 사랑실천을 머리에 띠를 띠고 합니다. 전도도 운동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 배운 것입니다. 주님은 그저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묵묵히 빛으로, 소금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고단하고,지루하고,진부한 내 삶의 자리지만 오늘도 그 자리에 서서 눈물로 묵묵히 벼텨 내야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각자 에게 주신 자기 몫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갑시다. 이스라엘이 기브온과 조약을 맺은 내용입니다. 그것을 안고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세상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과 대립각을 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가족이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위에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이 있다면 그들에게 의도적으로 잘 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추도예배를 드리든,제사를 드리든,도와 주어야 합니다. 기어코 제사상처럼 차려 놓고 예배를 드리자고 하면 많이 차려 놓으십시오, 그런 비 본질적이고 형태적인 것으로 싸우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질적인 것, 어떻게 나를 통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이 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 설득되고 녹아졌는지 성경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기브온에서 일천번제가 드려진 사실을 성경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나의 용량을 넓히고, 도량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과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끌어안는 그리스도인,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우리 삶의 숙제입니다. 이 숙제를 하기 위해 오늘도 나에게 주신 삶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텨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기도 지난 7개월 동안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건강한 삶을 살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8월 첫 주일에 예배당에서 라이브 톡으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결단하게 하옵소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 힘들지만 주님을 바라보며 잘 감당하게 도와 주옵소서. 8월 한 달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함부르크 소망교회 성도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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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8월 16일 “택한 자녀들을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만나라.” 여호수아 10장 6절 -14절 노환영 2020.08.18 1129
20 7월 26일 “에발 산의 복음을 삶에서 누립시다.” 여호수아 8장 30절 -35절 노환영 2020.07.31 1446
19 7월 19일 “약속의 아침을 소망하라.” 여호수아 8장 1절-9절 노환영 2020.07.23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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