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4일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라.”
누가복음 24장 50절-53절
“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주일예배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난 21일은 승천일로 쉬는 날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다가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셨던 이별의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여러분! 언제나 이별은 슬프고 아픔이 따릅니다. 우리 어른들이 독일로 오기위해 조국을 떠날 때 가장 큰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가족과 친지를 떠나야 했고, 정신적으로 조국을 떠난 것입니다. 특히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성도들과의 이별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충격과 슬픔을 주는 이별은 사별이라고 합니다. 고향과 부모를 떠나 멀리 떨어져 살면 부모나 형제가 소천해도 장례식 조차 참석할 수 없습니다. 그때의 슬픔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도 누나가 교통사고로 소천 했지만 이별의 자리에 가지 못해 기도하며 슬픔을 극복한 경험이 있습니다.
다음은 단란한 가정이 깨짐으로 느끼는 아픔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이별과 고통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아픔이고 고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아픔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합니다. 오늘은 아주 색다른 이별사건을 통해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슬픔을 이길 수 있는 기쁨에 대한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먼저, 아주 특별한 이별의 장면입니다.
본문에는 아주 기뻐하며, 감격적으로 이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서 이런 이별의 모습은 찾아 보기가 어렵습니다. 딱 한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사실 함께 생활하던 예수님을 보내야 하는 제자들은 슬퍼하다 못해 낙심하고 탄식할 입장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3년 넘게 따라 다니면서 가정을 잃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업도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재산도 다 없어졌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이 있다면 냉대와 박해가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생활문제나 장래에 대한 어떤 대책이나 말도 없이 떠나가신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슬퍼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찬송을 하였습니다. 보통 기뻐한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냥 찬송한 것이 아닙니다. 매일 성전에서 찬송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여러분! 사실 기쁨이나 슬픔의 문제는 환경적인 문제보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슬퍼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희망적이거나 절망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제자들의 마음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마음의 문이 닫히면서 실패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런 눈으로 부활의 소식을 듣고 부활의 주님을 보니까 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확인을 하고서야 믿습니다.
제자들은 평소 주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아무 힘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절망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의 눈과 마음을 서서히 열어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1절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누가복음 24장 32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누가복음 24장 45절에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이 제자들의 “눈을 밝히시고,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마음을 열려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열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자기라는 마음의 감옥에서 빠져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라는 감옥에 갇혀 삽니다. 자기 안에 갇혀 살면 비극적이 됩니다. 이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 싸움은 내 힘이 아닌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시면 도와주십니다.
철학자 N. 베르자예프는 현대에 대해 “우리는 기쁨도. 소망도 없이 이제껏 살아 보지 못한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다”라는 예언의 말을 했습니다. 현대는 외적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없이 발전되고 화려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점점 어두어 지고, 우울하고 불안하며 부정적이 되고, 절망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두 점점 자기라는 감옥으로 들어가서 그 속에 갇혀 살기 때문입니다. 자기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기분 나쁜 일들만 생깁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뿐입니다. 분통이 터지는 일뿐입니다. 이렇게 자기라는 감옥에 갇히면 그 사람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제자들은 주님의 승천을 보면서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삶의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불행해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태양을 등지고 자기를 바라보는 사람은 그림자만 보인다. 그림자를 제거하는 방법은 태양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활짝 열릴 수 있기 바랍니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사모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임하십니다. 오늘 성령이 임하심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여러분 모두 열린 마음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음이 열린 후에야 비로소 기쁨이 그들 마음속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늘 찬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 요한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마음은 항상 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무엘을 기도로 얻은 한나도 찬양을 합니다. 예수님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도 찬양했습니다. 바울도 옥에 갇혔지만 찬양했습니다. 기독교는 깊은 밤중에 찬송하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할렐루야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사람은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열리고 기쁨으로 주님을 늘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은 이별을 하면서도 기쁨이 넘쳤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과 마지막 이별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기쁨이 넘쳤던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승천이 주는 환희, 기쁨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십시오. 누가복음 24장 50절-51절에 “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 지시니]”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제자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천천히 하늘로 올라 가십니
다. 제자들의 눈이 사라져 가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누가는 올라가셨다는 말을 미완료로 표현했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몸이 놀라운 방법으로 점점 높이 올라갔습니다. 한동안 제자들이 예수님의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장엄한 모습입니까? 여러분! 어떤 이별도 이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한복음 14장 1절-3절의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제자들은 우리도 빨리 그 곳에 가야한다는 마음으로 충만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이 여러분이 거할 거처를 예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2절에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제자들은 모두 엎드려 주님을 경배했습니다. 기쁨과 경외하는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베다니에 돌아와서 제자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누가복음 24장 53절에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제자들은 늘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열리니까 기쁨도 충만하였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주님의 승천하시던 모습을 본 후에는 늘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사도 바울의 고린도후서 6장 8절 10절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하늘의 영광을 맛본 사람들은 그 황홀한 미래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들에게 능력이 필요합니다. 능력이라는 말은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입니다. 결국 그들 속에 감춰져 있는 능력을 성령님께서 폭발시키시고 역사하십니다.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에게 아리스티데스가 보낸 보고서에 당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설명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사랑합니다. 그들은 과부들을 반드시 도와 주고 또 고아들을 해치려는 사람들로부터 구원해 줍니다. 만약 그들이 무엇인가를 갖고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만약 그들이 나그네를 보면 그를 집으로 맞아 들이고 함께 즐거워하며, 그 나그네가 마치 친형제인 것처럼 대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보통의 의미의 형제로 생각하지 않고 성령을 통한 하나님 안에서의 형제들로 생각합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강림 이후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과 삶을 그대로 보고한 것입니다. 브루스 박사는 “이런 사랑과 환희에 넘치는 삶이 로마를 정복했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초대교회의 믿음과 사랑을 우리도 본받아야 합니다. 코로나 19로 고통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가능하면 우리도 도와야 합니다. 지난 4월 중순에 우크라이나 선교사님과 통화를 하는 중에 우크라이나 상황은 현지 목회자와 성도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는 훈련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코로나 19로 행사가 취소되면서 사용하지 못한 1-2사분기 선교비가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가장과 문장로님이 선교헌금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일차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김용만 선교사님과 드네프로 최광순 선교사님에게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자포리자의 13분의 현지 목회자와 7분의 성도에게 필요한 용품이 전달되었습니다. 드네프로 도 최광순 목사님이 목회자와 성도들에게 전달한 기쁜 소식을 받고서야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는 24일까지 이동규제 행정 명령 기간입니다. 6월 초로 연기될 것 같다고 합니다. 바라기는 6월에 성도 여러분이 모두 교회예배당에 오셔서 예배를 하게 되면 그때 우크라이나 현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한 구제모금을 하면 좋겠습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에 흉년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마게도냐 성도들이 연보한 물질을 바울이 구제헌금으로 전달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직접 갈 수는 없지만 고난의 현장에 계신 선교사님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2차로 나눌 수 있도록 현지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해서도 함께 중보기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론으로 교회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봉사의 힘과 전도의 능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힘은 다름 아닌 부활의 확신과 기쁨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힘입니다. 부활의 복음이 선교와 전도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보면 사도와 성도들에게 부활의 확신과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계속 기쁨이 충만하였다는 기록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기쁨이 있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어 더 큰 기쁨이 임하는 싸이클이 신앙 안에서 반복되어야 합니다.
기쁨과 성령, 이 두 가지가 기독교의 힘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있아도 기쁨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전도나 선교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나에게 아무리 잘해 주지만 얼굴을 찡그리며 하면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이왕에 기쁨으로 대해 주면 감사하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 기쁨이 없이 한다면 아무리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고 해도 어떤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기쁨은 있는데 성령의 능력이 없다면 그 웃음은 조작된 것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닫힌 마음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좁아진 자기 감옥에서 나오시기 바랍니다. 내 생각대로 되어야만 하고, 내 주장만 가장 옳고, 내 주장대로 이루어져야 행복하기를 언제까지 고집하겠습니까?
행복과 기쁨이 여러분 안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 나라에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안에 있습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항상 기뻐하며 찬양하는 삶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 충만함으로 거하십니다. 그때부터 전도와 선교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힘을 얻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활의 확신과 기쁨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충만하여 코로나 19를 이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코로나 19가 모든 것을 빼앗고 차단하는 이 시대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 있는 부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 마음에 항상 기쁨이 있게 하시고 찬송하는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니 고맙습니다. 세상과 환경과 전염병에서 내 눈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며 찬송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소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성도와 함부르크 소망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대에 쓰임 받는 성도와 교회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