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 영적인 복을 선택하자.” 여호수아 14장 6절-12절

by 노환영 posted Sep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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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복을 선택하자.” 여호수아 146-12

 

오늘도 현장예배와 라이브 톡으로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만나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코로나 일구로 예배의 방법과 생각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예배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또한 예배의 본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며 높여 드리는 일입니다. 짐승을 잡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하신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신 일에 대해 감사와 찬양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의 희생이 요구되는 자리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희생하심을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자리이고 시간입니다. 이 고백의 삶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 든 예배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예배가 있는 곳이 성령을 모신 거룩 한 전으로 교회입니다. 그런 예배가 있다면 우리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으로 예배합시다.

오늘은 여호수아 146-12절 말씀을 통해영적인 복을 선택하라는 말씀을 함께 듣기를 원합니다.

먼저 제비뽑기로 땅을 분배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호수아 14장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한 가지는 1-5절에 가나안 땅의 분배이야기입니다. 전쟁을 마치고 가나안 땅을 열두 지파에게 분배하는 내용입니다. 다른 한 가지 이야기는 85세된 갈렙이 40년 전에 약속받은 지역의 땅을 요구내용입니다. 민수기 3354절에 너희의 종족을 따라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눌 것이니.”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싸움을 마치고 땅을 제비뽑기로 분배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열두 지파가 전쟁을 해서 땅을 거의 다 점령하였습니다. 이제 땅을 분배하려고 합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 40년 동안에 지도자들의 속을 얼마나 많이 썩였습니까? 고집도 쎄고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우리들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좋은 지도자 를 통해 가나안까지 하나님이 인도 하셨습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다른 방법으로 땅을 나누었다면 아주 큰 혼란이 생겼을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살기도 전에 왜 우리는 숫자가 많은데 이것밖에 안 주나? 왜 그 지파에게는 평지를 주고 우리에게는 산악지대를 주나?” 지파마다 욕심을 부리면서 혼란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제대로 살아 보기도 전에 지파끼리 충돌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입니다. 다른 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여호수아가 카리스마 있게 리더십을 행사했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그런 시시비비의 요소들을 제압하고 일체 아무 말도 못하게 눌러 놓았습니다. 그러면 아마 인간의 탐욕과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좀더 좋은 땅, 좀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엄청난 로비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간성을 잘 아신 하나님께서 아예 땅을 분배하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제비뽑기를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어느 누구도 분배한 땅에 대해 이의를 달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제비뽑기로 뽑은 그 땅은 크든 작든, 좋든 험난하든 하나님이 그 지파에게 주신 땅입니다. 또한 그 민족과 지파가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에 따라 인도를 받음을 선언하는 의미였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제비뽑기 하는 과정도 공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표시를 해 놓고 이것 뽑으라는 방법이었으면 제비뽑기는 의미가 없습니다. 제비뽑기 방법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누가 주관을 했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여호수아 141을 봅니다.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가나안 땅에서 받은 기업 곧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족장들이 분배한 것이니라.” 이 구절에는 제비 뽑는 일을 주도한 세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제일 먼저 제사장 엘르아살입니다. 다음은 지도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 니다. 마지막으로는 각 지파의 족장들입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모든 전쟁에서 항상 앞장선 인물이 여호수아입니다. 하지만 땅 분배과정에서는 여호수아가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였습니다. 성경에서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순서도 또 하나의 내용임을 놓치면 안됩니다. 사건도 중요하지만 기록된 순서도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본인이 경험한 이야기를 직접 썼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자기 이름을 두 번째로 집어 넣었습니다.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도 시대를 내다보는 계시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중심 역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쟁시는 무관이 앞서야 합니다. 전쟁을 하는데 문관이 앞에서면 되나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전쟁을 해야 할 시대라면 여호수아의 이름이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쟁이 끝났고 안식이 필요한 평화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 제사장이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의 평안을 비는 목회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제사장 엘르아살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호수아가 그것을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대를 내다보는 눈, 계시의 정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이 시대에 무슨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는지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시대 속에서도 그래야 하지만 교회 공신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안에서는 높고 낮음의 개념이 없습니다. 영적인 공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질서를 위해 담임목회자 또는 다른 사역자, 또는 장로와 안수집사, 권사, 집사라는 역할을 주셨고 받았을 뿐입니다. 교회안의 직분은 높고 낮음의 개념이 아니라 살아움직이는 동역의 개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빨리 버려야 할 개념 중 하나는 교회의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직분을 계급으로 생각하는 오해가 하나님이 섬기라고 주신 직분을 갖고 권력으로 휘두르기도 합니다. 교회의 직분은 포지션이 아니라 기능입니다. 역할과 기능이며 신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살리고, 돕는 동역자로 나를 부르시고 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교회와 성도를 위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 일에 협력하고 동역을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갈렙의 형통을 통해 말씀하시는 메시지입니다.

여호수아 146절에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제비뽑기로 땅 분배가 시작됩니다. 하지만 85세인 갈렙이라는 노인이 갑자기 나와 한 가지를 요구합니다. 여러분! 갈렙이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도 아시는 바와 같이 여호수아와 정탐을 함께 했던 동료였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불안해서 지파마다 한 사람씩 뽑아 열두 명의 정탐군을 만들었습니다. 군대식으로 선발대를 편성한 것입니다. 그들을 보내 40일동안 정탐하고 와서 보고를 합니다. 열 명은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 하나님이 대적을 우리 손에 붙여 주시면 정복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은 모세가 보는 앞에서 증인을 삼아 갈렙에게 이 땅을 네게 주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45년을 갈렙은 여호수아를 도와 묵묵히 일관되게 가나안 땅 정복에 동참했습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한 번도 이 과업에 대해 갈렙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갈렙이 영적인 공신체의 개념과 동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열 두 지파가 모두 제비뽑기 방법에 순응하여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다 지파가 여호수아에게 제일 먼저 나온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서열상으로 장남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장남 지파입니다. 그 유다 지파의 대표로 갈렙이 여호수아 앞에 나와서 요구를 한 것입니다. 놀라운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갈렙의 이름에 히 브리어의 뜻입니다. 갈렙의 이름의 뜻은 사자 새끼였습니다. 이런 의미의 이름을 갖고 있던 85세 노인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요구합니다. 여호수아 1412절입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여러분! 말이 됩니까? 다른 지파들이 다 제비뽑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엇이라고 이 산지를 내게 주소 서라고 요구합니까? 주동자가 갈렙입니다. 여러분! 갈렙이 유다 지파의 대표로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갈렙에 대해 성경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1517-21절입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중요한 구속사적 언약을 이루는 말씀입니다. 19절에 그니스 족속이 나옵니다. 그니스 족속은 이방 땅에 살던 이방인의 혈통입니다. 여호수아 146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갈렙의 족보에 그니스 사람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유다 지파의 대표로 갈렙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사실 유다 지파 사람이 아닙니다. 이방인 그니스 족속의 자손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놀라운 구원 역사의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꼭 정통 유대인이라는 혈통으로만 이어오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이방 여인 룻을 통해서도 그리 고 천하고 낮은 사람들의 혈통을 통해서도 이어오셨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니스 사람은 이방인인데 지금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장차 이 땅에 이루어질 구원의 세계사적인 그림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는 혈통적으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을 통해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해 살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다음은 갈렙이 헤브론 땅을 요구한 이유입니다.

여호수아 1412절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산지는 헤브론으로 해발 3,040피트로 926.592미터입니다.가나안 땅 중에서 최고로 높은 고지입니다. 이왕이면 좋은 평지를 구하지 않고 굳이 높은 땅을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 땅에 아낙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낙자손 은 여호수아 1415에서 알 수 있습니다.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놀라운 사실은 지형은 최고로 고지인 산지인데 성경의 역대 종족들 중에 가장 전투력이 강한 거인족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성읍들이 크고 견고했습니다. 갈렙이 그런 땅을 요청했습니다. 이미 약속을 받은 땅이지만 45년이 지났고 지금은 나이가 많아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입니다.

제비뽑기 순서를 기다렸다가 다행히 그 땅을 뽑으면 좋고, 안 뽑혀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모른척 하고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렙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유다 지파의 혈통도 아닌 갈렙이 유다 지파의 대표로 제일 먼저 그 산지를 요구한 것입니다.

이 부분을 갈렙의 용기, 희생정신, 믿음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영웅담이 없습니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갈렙입니다. 무엇을 뜻할까요? 지난 주에 아브라함과 롯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져 각자 살 곳을 택하여 갔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택했고, 그 곳은 당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최고의 요지였습니다.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던 그 땅을 선택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망하게 되었고 겨우 목숨만 건졌습니다. 여러분! 갈렙에게 당대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땅을 볼 눈이 없었을까요? 과거 정탐꾼으로 뽑힌 실력이 있던 사람입니다. 85년 인생의 경륜 도 있습니다. 어떤 땅이 좋고, 나쁜지 평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갈렙이 헤브론 땅을 요구했던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과 다르게 자신이 택하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갔습니다. 나중에 그 땅에 대해 나오는데 그 땅이 바로 헤브론 땅입니다. 이 헤브론 땅에서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음을 여러분도 다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갈렙이 그 놀라운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진짜 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내 눈에 보기 좋아 택한 떡이 입에는 달지만 나중에는 쓰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은 그것이 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눈이 밝은 사람이 깨닫는 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만 복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갈렙의 눈에는 좋은 땅이 안 보였을까요? 그러나 내가 선택하고 잡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땅이 참된 복의 땅이라는 것을 갈렙이 알았습니다. 그래서 45년 전 모세가 증인을 세워 하나님이 갈렙에게 주신다고 약속했던 땅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이 메시지가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갈렙이 헤브론 땅을 요구했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헤브론 땅에 담긴 구속사적인 면입니다. 창세기 1314- 18절을 보겠습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을 주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장막을 헤브론 로 옮겼다는 기록입니다. 그 헤브론 땅이 바로 갈렙이 요구한 땅입니다. 헤브론은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땅이었을까요? 창세기 234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습니다. 아브라함이 유일하게 돈을 지불하고 산 땅이 바로 이곳입니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땅을 산 것입니다. 창세기 2318-19절입니다. “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19 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 아브라함이 여기서 살았고 아내를 장사지냅니다. 창세기 3527절에는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이삭도 살았음을 보여 줍니다. 헤브론의 다른 이름이 기럇 아르바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장사지낸 후에 야곱도 그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49장에 야곱이 임종이 가까워 열두 아들을 불러 기도해 주었습니다. 열두 아들을 한 사람씩 기도하고 지파가 될 것을 예언을 하며 그 지파의 그림을 보여 주었습니다. 창세기 499에 유다 지파에 대한 예언을 했는데 그 내용에 유다를 사자 새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갈렙의 히브리어 뜻이 무엇이라고 했죠? 사자 새끼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대로 갈렙이 유다 지파의 대표로 나왔습니다. 창세기 499-10을 봅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0절의 실로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어느 지파를 통해 오신다는 예언입니까?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까지 이 헤브론 땅을 그토록 집착하고 그 땅에 머물러 살았던 이유였습니다. 유다 종파의 정통 조상들이 그 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땅이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어서가 아닙니다. 유다 지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갈렙이 믿음이 좋거나 희생정신이 강해 다른 지파들이 모두 싫어하는 그 산지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는 말씀입니다.

갈렙의 요구는 놀랍게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라는 신앙고백과 같습니다. 이런 구속사적인 집착과 신앙고백이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요구하는 갈렙의 신앙과 믿음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으로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계속 강조하는 내용이 일관적입니다.

여호수아 149- 12절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10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11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12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그냥 산지를 달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산지를 달라고 했습니다. 근거는 약속대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한 가지 사실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즉 말씀대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말씀대로 부활하셨다고 합니다. 일관되게 말씀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렙이 붙들었던 근거입니다. 또한 갈렙은 지금 내가 85세지만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처럼 지금이 오히려 강건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육체적인 건강으로만 이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절에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 했습니다.

갈렙은 40년 전보다 지금이 더 강건하다는 말의 깊은 뜻은 45년 전에 약속 받았던 땅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로가 오실 때까지라고 예언되었던 땅, 유다 지파를 통해 오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였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을 85세가 되도록 푸른 기상으로 품고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갈렙이 진짜 청년입니다. 나이가 젊다고 모두 청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흐리지 않고 붙잡는 사람, 날마다 영적으로 맑아지는 사람, 그 사람이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는 청년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 산지를 달라는 주장과 선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저와 여러분도 이 고백을 해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 산지를 달라고 해야 할까요?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소망하면서 모든 삶의 시간을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계획의 초점을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이 맞추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여호수아는 시대를 보는 계시의 정신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땅에 들어가 어둠의 권세를 쫓아내는 갈렙의 결단처럼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헌신하는 결단을 우리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 우리에게도 원하시는 일입니다. 인도의 10, 중국의 15억까지 합치면 25억 인구가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불모지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지금은 여유가 있어 나누어 주는 수준에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내 것을 잘라 주는 나눔이 필요합니다.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많습니다. 큰 손을 펴서 필요한 곳에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의 릭 워렌 목사가 한국에 왔을 때 외친 메시지를 소개합니다.“지난 1세기 동안 세계역사에서 가장 복을 받은 민족은 한국이고, 그 중에서도 복 받은 곳은 한국 교회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 교회는 나누어야 할 때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인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의 시대정신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남은 생애 중 얼마간이라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우리 한민족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적과 부흥을 주셨습니다. 주변 나라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더 큰일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찾고 힘써야 합니다. 개인이나 교회도 선교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힘써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삶 속에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결단과 헌신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산지를 찾고 그 곳에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을 전하는 남은 생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너는 내것이라고 부르시고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나에게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일들을 중에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나에게도 갈렙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산지를 취하게 하옵소서. 나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나를 부르신 자리에서 갈렙처럼 순종하고 충성하게 하옵소서. 나를 구원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남은 생애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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