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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나에게 주신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자!” 여호수아 201-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2020년 한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이 지난 1일 목요일이었습니다. 일년 중 최고로 좋은 결실의 계절에 중추절, 추석이 오면 온 가족이 함께 모여 행복한 시간을 갖습니다. 송편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습니다. 어릴 때는 송편 만드는 일을 싫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양이 너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토요일 집에서 둘째 딸과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어릴 때 경험이 있어서 하얀 송편을 제가 만들고 딸은 쑥을 넣은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만들기 시작해서 반죽을 다 사용하여 딸이 만들던 반죽을 사용하였습니다. 딸이 자신이 나머지를 만들겠다고 그만 하라고 해서 그만 두었습니다.

사먹는 송편보다는 직접 만든 송편의 맛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자녀들에게 알려 주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 일구는 그런 행복한 시간도 갖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걱정하고 이동과 만남을 자제하는 미덕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신 전화나 화상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고향 집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명절이 피부로 와 닿지 않습니다. 쉬지 않고 평소와 같이 근무하거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고 안부를 주고받는 일을 멈추 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님이 이 땅에 살아 계실 때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떠나 가시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위해 할 일이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도 10월 첫 주일예배에 함께 예배하시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라이브 톡으로 예배하는 여러분과 주님이 이 시간 함께 하십니다. 오늘 라이브톡에 한국에서 3개월 연수차 어제 오신 집사님 한 분이 예배에 동참하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은 여호수아 201-6을 통해 나에게 주신 도피성,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살자!라는 말씀을 함께 듣겠습니다.

여호수아 20장은 짧은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도피성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도피성이 오늘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 히브리서 11-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구절에서 말하는 옛적에 선지자들은 구약시대 또는 구약 성경을 뜻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날 마지막인 지금은 그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아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신약시대이고 은혜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구약시대는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셨는데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약성경이나 인물 그리고 사건과 장소들은 모두 다 장차 오시게 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들이었습니다. 예를 든다면 모세는 중보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사이에 중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것은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명입니다. 그렇다고 모세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부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뜻합니다. 야곱은 성화에 대해서 보여 줍니다. 아주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음을 바로 앞에서 고백을 통해 성화의 삶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 성화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조금씩 고난과 환경을 통해 조금씩 변화되고 달라져 갑니다. 요셉은 영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겪고 이기면 영화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들이 여호수아 20장을 통해 살펴보는 도피성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로 오셨는가? 그 분이 오늘 나에게 누구신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먼저 도피성을 세우게 하신 배경입니다.

여호수아 202절에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도피성 제도는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 습니다. 2절에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정하여로 히브리어 어원은 어떤 사물이나 장소에 대해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사람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정하다는 말의 뜻은 법률적으로 위임하여 보호하도록 맡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도피성이라는 사물에 사용했습 니다. 그런데 사용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도피성이 장차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도피성이라는 사물로 설명한 것입니다.

여러분! 도피성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제비뽑을 당시 레위지파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열두지파에서 각자 성읍을 하나씩 내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피성의 주인은 실제 레위지파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땅 가운데로 요단강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그 요단강을 기준으로 한쪽에 도피성이 3개씩 모두 6개를 정했습니다. 이 지도에서 도피 성의 위치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팔레스타인 전역 어디에서 사고가 나도 직선거리로 반나절 안에 모두 들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피성들이 있습니다. 6개의 도피성이 균형 있게 거리가 같아 누구든 반나절 안에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 민수기에서는 이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봄에 이스라엘 남자들이 1년에 한번 전부 동원되어 빗자루와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와 길을 보수를 했습니다. 피난 오는 사람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피난처라는 팻말이 잘 보이도록 보수 작업까지 하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위급한 상황에 언제나 피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도피성은 지형적으로 가장 높은 산 중턱에 세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인식 속에 높은 곳은 실제로 높다는 개념보다는 안전하다라는 것을 뜻합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이곳에 유대인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그네, 과부, 이방인 심지어는 종도 죄를 지은 사람까지도 들어가서 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혐의가 확실하면 피신하게 하고 그 안에서 모든 의식주를 무료로 해결해 준 것입니다. 이방인을 구원하는 길을 여기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피성에 피신한 사람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경우입니다. 먼저 대제사장이 늙어서 나이 들어 죽으면 그 사람에게 씌어졌던 죄가 면제 됩니다. 이 때 피신한 사람들이 나가도 그에게 보복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피신한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외에는 도피성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도피한 사람들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나 무엇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저주하거나 심판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도피성이신 예수님 안에 영원히 거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 도피성은 우선 가나안 땅에 정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상적부터 약속 받고 들어가기를 소망하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좋은 땅이고 완전할 것 같은 가나안 땅 안에 도피성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 땅에서 살인과 보복 등 각종 범죄가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도피성을 정한 것입니다. 아주 치열한 갈등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도피성에 어떤 사람이 들어가는지 샘플을 정해 알려 주었습니다. 신명기 19에 두 사람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올라갔습니다. 열심히 나무를 하다가 한 사람이 도끼로 나무를 내려 쳤는데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진 것입니다. 공중으로 날아간 도끼가 옆에서 함께 나무를 하는 친구의 머리를 찍어 죽었습니다. 이 경우는 고의로 친구를 죽인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법률용어로 과실치사입니다. 그런 일이 가나안 땅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오늘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 전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전히 죄를 짓고 사고를 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나안 땅에서 사는 삶의 모습입니다. 가나안 땅은 아직 완성되지 않는 죄인들이 살고 있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는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창세기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 환경은 흠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살던 곳은 에덴동산이었습니다. 거기는 부족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인류를 위해 하나님이 완전하게 만들어 놓으신 유일한 공간입니다. 아무 흠이 없었던 장소입니다.

하지만 죄가 에덴동산 밖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졌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통해 죄는 환경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발합니다. 아무리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아도 죄는 사람의 내면에서 생긴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최초로 하나님을 거역한 인류의 상태였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의 벌거벗은 모습에 수치를 깨닫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습니다. 그런데 강한 햇빛이 나서 그것이 말라서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 가죽 옷을 만들어 입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 있을까요?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여 완전해지는 그날까지 가리고 감추어 줄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신 속에 있는 것을 모두 내 보여 줄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사람은 없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거래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소돔성을 멸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50명이 없어서 45명으로 다시 제안했습니다. 다시 40명으로 줄이고 그렇게 하여 10명까지 내려 갑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에는 의인 10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 말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로마서 310절 말씀처럼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이 세상에 스스로 온전한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여야 우리들이 거룩해지고 완전해 질 수 있습니다.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지는 그 날까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수치와 더러움과 아픔을 가려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 가려 주심이 있어서 오늘 우리들도 의로운 척하며 살 수 있는 은혜를 입고 삽니다. 이것이 바로 도피성의 의미입니다.

이 도피성에는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오살한 자, 실수로 살인을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는 동해(동형) 보복법이 있었습니다. 동해는 같은 행위의 행동을 말합니다. 성경 신명기 1921절에는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 갚으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 한 쪽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죄성을 갖고 있어 복수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쪽 눈만 아니라 이까지 뽑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는 이, 눈은 눈만 갚을 수 있도록 명령하심은 인간의 죄성을 이해하시고 자비의 법률을 주신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피성이 필요했습니다. 살인한 자나 쫒아가는 사람도 나쁜 사람입니다. 둘 다 본질상 죄인입니다. 예를 들면 배가 열리는 나무는 배 나무입니다. 그런데 아직 배가 열리지 않았다고 해도 그 나무는 밤나무가 아니라 배나무입니다. 결국 같은 배나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죄를 지은 사람은 행위적으로 죄의 열매를 맺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서 의인이 아니라 아직 죄의 열매를 맺지 않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려지고 덮여 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도피성으로 피난한 사람이나 죽이려고 쫒아가는 사람도 죄인이라는 본질은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죄인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결론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도피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도피성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와 은혜를 입지 않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도피성의 위치는 가장 높은 언덕에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안전한 곳입니다. 우리의 영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입니다. 그 도피성이 하늘 보좌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누더기 같은 죄인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임재하시고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도피성으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삶의 중요한 명제가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 가슴 한 복판에 도피성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도피성은 높은 산 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도피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라고 해도 갈 수 없는 우리의 절망적인 상태를 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의 모습을 입고 높은 보좌에서 친히 우리 각자에 임하신 도피성,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와 긍휼을 입고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도피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에는 우리가 그런 긍휼과 그리스도의 자비를 입은 존재이기에 누군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를 찾아가야 한다는 말은 행위로만 다가가는 것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높고 높은 영광스러운 분이신데 죄인의 모습으로 오셔서 나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신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눈물겨운 고난의 삶의 현장으로 낮아져 다가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믿음이 좋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어려움에 직면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교양 있는 척 하고 형식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이러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 우리들이 매일 접하는 사건과 사고소식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저것들이 인간이라고...혀를 차며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것은 아직 내가 얼마나 커다란 은혜와 용서와 긍휼을 입고 사는 존재인지를 모르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런 소식을 들을 때 죄를 지은 사람을 향해 삿대질보다는 그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런 사람과 다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고난과 절망 속에 있거나 죄로 고통당하는 사람에게 정답을 들이대지 않아야 합니다. 전도서 716절에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조금씩 죄를 짓고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잘난 척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도끼리 대화를 하면서 지나치게 종교적인 단어와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면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은 더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기도도 안될 정도로 힘든 사람에게 그럴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거나 정답을 말해 주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저 그래, 그렇지, 너무 힘들면 기도도 안 나와라는 심정으로 그 사람의 상태까지 낮아져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마음을 열어 기댈 수 있는 편안함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난처가 되어 주는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속에 피난처를 만드십시오. 내 주위에 고통당하거나 죄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로 이 시대 우리 믿는 사람들이 사는 진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고 사용하십니다. 오늘 예배에 함께 하신 여러분 모두가 이 세상의 도피성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각자 역할을 모두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살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가나안 땅과 같은 세상에서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누리게 하심도 고맙습니다. 우리도 받은 은혜와 긍휼을 전달하는 삶을 살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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